이창용 “규제 없이 스테이블 코인 허용하면 자본유출 우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 대해 급격한 자본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달러로의 환전이 모니터링되지 않으면서 외환 관리에 허점이 생길 것이란 지적이다.
파월·라가르드도 ‘스테이블 코인’ 우려
이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연례 통화정책 포럼에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 카즈오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와 함께 정책 토론에 나서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한 후 많은 핀테크 회사들이 정부에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비은행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 정부 기관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규제되지 않은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허용할 경우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의 교환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자본유출 관리가 약화되고 통화정책 유효성도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블록체인 기술로 고객확인(KYC)과 이상거래 탐지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완벽하게 가능할 지 확신할 수 없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이같은 점을 고려해 은행 등 규제가 가능한 곳부터 허용하고, 추이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스테이블 코인에 관해선 다른 중앙은행 수장들도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파월 의장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연방·주 정부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베일리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로서 신뢰와 명목가치 보존을 충족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우려를 드러냈다. 그는 “화폐가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고, 공공의 이익에도 좋지 않다”면서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정책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고, 의도치 않게 통화 주권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했다.
금리인하 변수는 ‘수도권 집값’

이 총재는 한국이 금리인하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재의 성장률을 고려할 때 당분간 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변수로는 ‘금융안정 리스크’를 지목했다. 이 총재는 “수도권 주택가격이 매우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통화정책 완화 속도와 시기를 결정할 때 이 점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선 “물가보다는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문제”라고 했다. 한국은 보복관세로 대응할 가능성이 낮아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동차와 철강 등에 대한 관세는 GDP에 1%포인트에 가까운 영향을 미치고,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에 따라 영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구조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잠재성장률이 3%대에서 2% 밑으로 떨어졌는데 국민들은 여전히 3%대 고성장을 바라고 있다”며 “통화정책에 부양 압력이 높아지고 있지만 필요한 것은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월 의장은 “관세만 빼면 인플레이션은 예상했던대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관세정책만 없었다면 금리 인하를 더 했을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트럼프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제 일에만 집중한다”고 말해 청중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 발언에 라가르드 총재는 “파월 의장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고, 이 총재도 “그렇다”고 화답했다.